2022년 1월 중순경에 아마추어 금속탐지기가 영국 남서부의 한 농장에서 발견한 금화가, 영국 경매에서 54만파운드(8억 7,845만)에 팔렸다. 이 금화는 헨리 3세의 금화로 불리며, 현 시점에서는 8개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왜 헨리 3세의 금화가 8개 밖에 없는걸까?
발견자는 당초 그 금화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화고, 페이스북에 발굴한 금화 사진을 올렸더니, 오크셔니아에서 화폐 전문 감정인으로 있는 그레고리 에드문드 씨가 그 사진을 보고 금화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것. 발견된 금화는 비교적 상태가 좋아, 경매에서 54만파운드에 낙찰되었다.
13세기경 영국 경제는 은본위제였다. 그러나 유럽 전체가 부유해지면서, 13세기에는 시장에 금화가 유통되고 금화가 발행되었다. 예를 들어, 2016년 영국에서 발굴된 금화는 이슬람 제국의 디나르 금화를 모델로 11세기에서 12세기에 주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탈리아 도시국가인 제노바와 피렌체에서도 각각 독자적인 금화를 사용했다고 한다.
헨리 3세가 금화를 발행한 것은 1256년의 일로, "금화 1개=은화 20개"라는 교환 환율이 정해져 있었다. 즉, 손님은 은화 20개 대신 새 금화 1개를 상인에게 지불할 수 있다는 것. 이 환율의 뒷받침으로, 헨리 3세 자신이 소유한 은화 19.5개를 금화 1개로 환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차액의 0.5매 분은 수수료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화와 은화를 동시에 운용할 경우, 이 금화와 은화의 교환 비율이 적절한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만약 이 환율이 시장가격과 괴리되면, "실질가치가 더 높은 화폐가 유통경로에서 밀려나게 되고, 실질가치가 더 낮은 화폐가 유통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
역사가 데이비드 카펜터 씨는 자신의 논문에서 헨리 3세가 정한 환율이 적절했다고 주장. 헨리 3세의 금화 1개의 무게는 당시 유통되던 은화 2개와 같았고, 당시 귀금속 환율로 보면 금과 은의 가치 비율이 10대1이었음을 감안할 때 금화 1개=은화 20개라는 환율이 타당하다고 카펜터 씨는 말한다.
그러나 역사가 존 먼로 씨는, 영국 은화의 순도가 92.5%이고, 나머지는 비금속이었다고 지적. 따라서 헨리 3세가 정한 금화 1개=은화 20개라는 환율은 실제로 금과 은의 가치 비율을 9.25:1로 보게된다. 다시 말해 당시 영국 상인들에게 1kg짜리 금화를 9.25kg짜리 은화와 같은 가치로 사용하기 보다, 1kg짜리 금화를 주괴 삼아 은 10kg로 교환하는 것이 더 유익했다는 것.
헨리 3세는 환율 설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고, 금화를 발행한 지 6년 후인 1265년에 금화 1개=은화 24개로 수정하였다. 하지만, 이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의 금화는 녹여 잉곳해 주조되어 은으로 교환해 버렸다고 여겨진다. 헨리 3세의 금화가 거의 발견되지 않은 것은 대부분의 금화가 녹았기 때문이라고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