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전과를 올렸던 최강의 전사 Top 8

지구상 역사에 등장하는 국가와 제국의 힘은 그 병사의 강도와 비례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미래의 성장과 권력은 정예병사들이 전장에서 발휘 된 힘을 보면, 대략 예측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파워풀 한 전사들 중에서도 특히 정예라고 여겨지는 세계 각지의 강자들을 뽑아봤다.


▲ 몽골 궁병


몽골 궁기병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의 유목을 하던 유목민에서 태어났다. 정착 사회를 형성 한 해안 지역과는 달리, 임시 거처로 유라시아 대륙을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 유목민의 남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마상에서 보내고, 말은 자신의 팔다리나 다름 없었다.


궁기병이 사용한 활은, 축이되는 나무 프레임에 동물의 힘줄 층과 뿔 층을 설치 한 합성 활이다. 마상에서도 취급하기 쉽도록 짧게 설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기는 힘은 45kg라는 강력한 것이었다고 한다.



▲ 잉글랜드의 장궁병


1415년 영국과 프랑스가 격돌 한 아쟁쿠르 전투는, 잉글랜드의 장궁병의 뛰어난 전과로 가장 유명한 것일 것이다. 헨리 5세가 이끄는 잉글랜드 군의 장궁 부대는 3배 가까운 프랑스 군의 중장기 병을 압도했다.


중세이 활 당기는 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있고, 90~110파운드(40.8~49.8kg)라는 설과, 더 무거운 150~160파운드(68~72.5kg)라는 설이있다. 이것을 쉽게 몸에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영국의 장궁병은 매우 강력한 활을 취급하기 위하여 훈련 된 전문적인 군인이었다는 것이다.





▲ 제노바의 석궁병


발레스트리에리 제노베시는 제노바 공화국의 유명한 군단이었다. 이탈리아 세력과 외세의 어느 쪽에 대해서도 용병으로 취급되었던 그들은, 숙련 된 군인인데다 비교적 다수의 병사를 동원 할 수 있었던 것도 보탬이되었다. 전문적인 석궁병을 정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제노바의 해양 정책에 기인하는 것 같다.


제노바는, 갤리선에 대해 일정 수의 석궁병을 승선시킬 것을 요구했다. 물론 그러한 법률이 있더라도 그대로 준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노바가 해양 패권과 교역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석궁병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scudo pavese라는 대형 방패로 몸을 지키면서 싸웠다. 장궁보다 가벼운 힘으로 취급되는 석궁이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 스파르타 전사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이다. "스파르타 교육"으로 알려진 특징적인 군사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도시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장 보병이 주력 이었지만, 그 교육 제도 덕분에 고대 그리스 최강의 군대를 자랑했다.


확실히 스파르타의 전사는 고도 한 훈련을 받은 군인이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헌법, 교육 제도, 철학문화, 경제력, 외교력, 심지어 음악과 춤에서도 존경받는 존재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육체의 단련보다 지식에 대한 열정 이야말로 스파르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 페르시아의 불사 부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정원 1만명의 중장병의 정예. 불사 부대로 뽑히는 것은 매우 영광이었다. 그 이름은 고고학자가 아타나토이(불멸의 뜻)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며, 오늘날 불사 부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대부분 그의 설명으로 전해진것.


헤로도토스가 아타나토이라고 부른것은, 누군가가 죽거나 부상하거나하면, 즉시 다른 병사가 보충되었기 때문이다. 적이 생각하기로는 항상 일정한 수의 병사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이것이 불멸과 부활을 연상케했다.


장비 또한 정교한 것으로, 갑옷은 금으로 빛나고 있었고,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등나무 방패, 창, 검, 대형 단검, 활을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페르시아 풍의 머리 장식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 마오리 전사


용기와 용맹으로 알려진 마오리 부대는 hapu라고도 불렀다. 수백명 단위로 되었고, 100명 미만의 hapu도 있었다. 대부분의 전사는 남성이지만, 여성 전사도 있었다고 한다.


마오리 전사는 보통 새벽에 싸웠다. 매복과 기습을 자랑하고 있으며, 뉴질랜드 열대 우림에 소리없이 녹아 있었다. 다음과 같은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와하이카 : 나무, 뼈, 연옥으로 만든 납작한 곤봉 같은 것.


. 오티아테 : 접근전에서 사용되는 짧은 곤봉


. 타이아하 : 옆에 홈이 나있어 적의 무기를 탈취할 수있다.


. 따오기 : 1.5미터 이상의 곤봉





▲ 바이킹


중세 초기 역사에서, 북방의 군사, 중상주의 정책, 이민 등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현재 바이킹의 이미지는 꽤 혼란스러운 느낌이지만, 본래의 바이킹은 약탈을 주 임무로 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내는 어부와 농부이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지역 리더의 소집으로 약탈, 무역, 이주할 수 있는 토지를 찾아 바다로 나섰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바이킹"이라는 용어가 인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이킹, 다시말해 해양 원정을 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인 장비는 창, 방패, 도끼, 칼과 쇠사슬 등이다.



▲ 로마 군단


로리카 세그먼타타를 입은 로마 군인들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모습일 것이다. 장비와 역할은 시대와 함께 크게 바뀌었다. 제정 로마 후기의 장비는 그리스 풍의 방패와 창에서 글라디우스 풍으로 변화했다.


그 규율을 존중하는 자세와 조밀 한 진형으로 싸우는 전법은 전설로 되어있다. 특히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고도로 훈련 된 직업적인 중장 보병이 탄생, 진군 전투, 건설, 정찰 등의 임무를 해내기도 했다. 종군 기간은 25년. 로마 시민만 군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