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일어난 너무나도 이상한 전쟁 5선

■ 가장 짧았던 전쟁


1896년 8월 17일 영국과 동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술탄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 전쟁은 불과 40분만에 끝났고,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이 전쟁이 일어나기 이틀 전, 잔지바르의 군주였던 하마드 빈 투와이니까 암살되어 버린다. 암살은 하마드의 조카였던 칼리드 빈 바루가슈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일어났다.



이 쿠데타로 잔지바르의 실권을 잡은 칼리드였지만, 다른 군주 후보였던 하무드 빈 모하메드가 이의를 제기. 그러나 칼리드는 궁전에 틀어박혔고, 군대 2800명을 집결시킨데다가 군함도 소집.


하무드는 영국에 협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영국군과 함께 싸우게 된다.


직전까지 평화협상을 계속했지만, 대답없는 채 최후 통첩 기한 인 8월 27일 9시가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2분후, 궁전에 영국군의 집중 포화가 시작되자 마자 궁전은 붕괴, 주력 전함도 침몰해 버린다.


쿠데타를 일으킨 칼리드는 독일 대사관으로 도망, 결국 전쟁은 끝났다. 단 40분간의 전쟁이었다. 잔지바르 측은 500명의 사상자와 군함 1척을 잃었지만, 영국군은 1명이 부상당했을 뿐....


40분간의 전쟁이었지만, 시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전쟁


그것은 네덜란드와 영국 국왕군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1651년에 시작하여 끝난것은 335년 후인 1986년이었다.



이 당시, 영국에서는 내전이 일어나 있었고, 국왕군과 의회군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상황은 의회파가 유리했고, 국왕군은 실리 제도의 작은 섬으로 쫓겨나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 의회군과 동맹국이었던 네덜란드 군이 국왕군의 영토 인 실리 제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


그러나 국왕군은 선전 포고에 즉시 항복했기 때문에, 네덜란드 군은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고 그냥 철수. 한 나라의 군대가 국가의 영토의 일부에 선전 포고를 하는 것은 애매한 것이었으므로, 네덜란드 군은 종전을 선언하지 않은 채 그냥 냅두게 된다.




그리고 335년 후, 실리 제도 의회의 의장으로 역사가 로이 던컨 씨가 아직도 실리 제도와 네덜란드가 전쟁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네덜란드 대사관에 연락하게 된다. 이같은 사실을 안 네덜란드 측도 확인하여, 1986년에 평화 조약을 맺어 완전히 종전하게 되었다는.....


■ 돼지 전쟁


이것은 1859년 미국과 영국령 북아메리카(현 캐나다)의 국경을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이다.


당시, 아직 국경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경 근처에 있던 산 후안 제도는 영국인과 미국인 모두가 살고있었다. 어느날, 산 후안 제도에 사는 미국인 농부가 자기 밭의 감자를 먹고있는 돼지를 사살해버렸다.



그 후, 이 돼지의 주인 인 아일랜드 인은 10달러를 변상해야 한다고 제안, 영국인 남성은 100 달러를 요구. 이것을 거부하고, 싸움 상태로 된 영국 정부 당국은 미국인 남성을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놀란 미국인들은 미국 군대에 도움을 요청.


이 때문에 국경 문제와 함께 미국과 영국이 전쟁 상태가된다.


그러나 양군 모두 먼저 공격하면 공격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군 상층부는 "겨우 돼지를 사살했다고 대국끼리 전쟁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어, 양국의 군대를 이 땅에 두는 것으로 합의, 전쟁이 종결 된 것이었다.


그리고 12년 후 1872년, 산 후안 제도는 미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영국군이 진을 치고 있었던 캠프는 미국의 직원에 의해 영국 국기가 게양되고 있다.


■ 에뮤 전쟁


에뮤는 호주 전역에 서식하는 조류로 국조는 아니지만, 호주 조류로 유명하다. 1932년 호주에서 에뮤가 많이 번식하여 농작물을 망치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같은 해 11월, 마침내 호주 군대에 의해 총을 사용한 에뮤 소탕 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에뮤는 발이 빠르고, 총 한방으로 잡을 수 없었고, 1마리당 10발 이상의 총알을 사용해야 했다.


결국 3000마리 이상의 에뮤를 잡았고, 그 작전은 서둘러 종료했다고 한다.




■ 축구 전쟁


축구 전쟁은 1969년 7월 14일부터 19일까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원래 이들 국가 사이에는 국경선 문제, 무역 마찰, 이민 문제 등이 산적 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1970년 월드컵 축구 예선이 진행되었다. 이 두 나라의 첫대결은 온두라스에서 열렸고, 방문한 엘살바도르 대표팀이 숙박하는 호텔에는 폭죽 등의 괴롭힘이 계속되었다. 



경기 결과는 1대0의 온두라스의 승리. 2차전은 엘살바도르에서 이루어지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온두라스 대표가 숙박하는 호텔에 서포터가 몰려 괴롭힘을 실시. 이에 온두라스에서 온 서포터가 분노, 폭동을 일으켜 150대의 차량에 방화.


또한 엘살바도르 인 2명을 살해 해 버린다. 결국 엘살바도르 대표가 승리, 최종 라운드에 진출. 이에 따라 폭동이 일어나고, 온두라스에 있는 엘살바도르 사람이 습격당하는 등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엘살바도르 정부는, 국가 비상 사태와 온두라스와의 국교 단절을 선언한다.


이렇게 전쟁으로 발전하고 있었지만, 국제 기관에 의한 조정에 의해 정전이 되었고, 종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종전으로부터 11년 후, 국교는 회복하였고, 12년 후에는 축구의 국제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